DNA
1963 1963 -
기술 지원의 중시와 고객 제일의 자세 - 창업기의 정신 -

창업자인 구보와 고다카는 종합 상사에서 반도체 제조 기기의 수입 판매를 하고 있었다. IC가 실용화 되기 전의 다이오드 및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기기이다. 일렉트로닉스 분야는 기술 레벨이 높고, 일진월보로 기술이 진보해 나가기 때문에 판매 후의 기술적 애프터서비스가 중요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일본 국내의 전기 제조업체에 미국제 기기를 납입하지만, 당시는 기술을 깊게 이해하고 조립을 지원하는 스태프가 적고 부품을 주문할 때 수입 허가를 받는데 한 달 정도 걸리는 것이 당연했다. ‘기기를 판매하기 전에 예비 부품이나 데모기를 가지고 담당자가 조작을 마스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느낀 두 사람은 기술과 서비스를 중시한 회사 만들기를 목표로 하여 1963년에 도쿄 일렉트론(TEL)을 설립하였다.
이런 자세가 미국 제품 제조업체로부터 신뢰를 얻어 대리점 계약이나 합병 회사의 설립 등에 의해 비즈니스가 확대해 나가는 기반이 되었다. 또 당시의 정신은 지금도 회사의 기본 이념 ‘최첨단의 기술과 확실한 서비스로 꿈이 있는 사회 발전에 공헌하겠습니다’에 반영되어 있다.

1963
(주)도쿄 일렉트론 연구소 설립
1964
미국 섬코사제 확산로의 수입 판매 개시
1965
미국 페어차일드사와 IC 테스터의 대리점 계약
1966
IC 테스터의 수입 판매 개시
1967
파네트론(주)을 설립하고 일본에서 최초로 IC의 스톡 판매를 개시
1968
미국 섬코사와 합병 회사 텔-섬코(TEL-Thermco)를 설립하고, 확산로의 일본 국내 생산을 개시
1969
텔트론(주)을 설립하고 카 스테레오 OEM 수출 판매를 개시
1970
요코하마로 텔-섬코(TEL-Thermco)를 이전하여 확산로 완전 국산화
CLOSE
1971 1971 -
이익을 생산해 내는 유연성 - 비즈니스의 대전환 -

1971년의 달러 쇼크(닉슨 쇼크), 1973년 오일 쇼크에 의해 일본 기업은 무역 적자에 시달렸다. TEL도 그 영향을 받아 이익이 대폭 감소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당시의 TEL 본체의 매출 약 200억 엔의 내역을 보면 거의 60%는 수출부문이 차지하고 나머지가 수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익을 보면 수출은 약 3억 엔의 적자. 그래서 TEL은 카 라디오 및 계산기 등의 민생 기기의 수출 사업에서의 철수를 결심했다. 적자라고는 하지만 60%의 매출을 차지하는 사업을 접는 것이다. 건전한 수익 구조로 회복시키기 위한 대담한 의사 결정이었다.
또, 이 위기적 상황에 맞선 것이 보다 안정적으로 이익을 생산하는 체제를 재건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타사가 쉽게 참가할 수 없는 최첨단 기술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성장성이 높은 반도체 제조장치와 컴퓨터 관련 기기에 특화한 사업 전개를 하는 등, 장기적 시점으로의 상품 전략을 내세운 것이다. 지금도 계승되는 이 방침은 TEL이 고부가가치의 제품을 계속해서 세상에 내보내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1971
자회사인 (주)멕 엔지니어링에서 라인 프린터 판매를 개시
1972
도쿄 프로세스 개발(주)을 설립하고 분석 기기(공해 방지 기기)의 수입 판매를 개시
자회사인 파네트론(주)이 인텔사의 대리점으로서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수입 판매를 개시
TEL America,Inc.를 설립
1973
미국 컴퓨터 비전사와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고 CAD/CAM 시스템의 수입 개시
야마나시 사업소를 개설
유럽 사무소를 설립
1975
당시 매출 60%를 차지하고 있던 카 라디오, 계산기 등의 민생 기기의 생산과 수출에서 철수
1976
텔-섬코(TEL-Thermco)사가 세계 최초로 고압 산화 장치를 개발
CLOSE
1977 1977 -
공정한 비즈니스의 계속 - 자사 생산의 확대 -

우수한 기술을 수입하는 것은 개발 투자의 일종이기도 하다라고 생각한 TEL은 미국의 장치 제조업체와의 합병 회사를 연이어 설립. 텔-젠라드(GenRad)사, 텔-배리안(Varian)사, 텔-램(TEL-Lam)사 등에서 일본의 반도체 제조업체의 수요에 부응하는 TEL 오리지널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다루게 되었다.
그 후 엔고 현상이 진행된 것으로 인해 미국 기업이 합병을 해소하고 일본에서의 생산 활동에서 철수를 결정. TEL은 고객님에게 계속된 제품 공급이라는 사명감과 지금까지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단독으로 제품 제조와 애프터서비스를 개시. 이에 의해 완전 국산의 제조 및 판매 체제가 구축되게 되었다.
바탕에는 ‘해외 제조업체와의 제휴는 서로가 행복하지 않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다. 단기적인 이익의 관점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이익도 시야에 넣어서 자사와 상대에게 이점이 있는지, 그리고 ‘고객님의 만족으로 이어지는지’를 생각하고 결단을 내린다. 제휴의 영속성을 계약으로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의 실질적인 만족도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공정한 비즈니스 관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1977
제1회 세미콘 재팬 개최・참가
1978
‘(주)도쿄 일렉트론 연구소’에서 ‘도쿄 일렉트론(주)’으로 상호를 변경
1981
텔-젠라드(TEL-GenRad)를 설립.
인서킷 보드 테스터를 국산화
1982
야마나시 사업소 내에 종합 연구소를 설립
텔-배리안(TEL-Varian)을 설립, 이온 주입 장치를 국산화
텔 멕(TEL MEC)(주)에서 클린 트랙을 개발 개시
1983
텔-램(TEL-Lam)을 설립하고 에칭 장치의 국산화
1984
도쿄 증권 거래소 시장 제2부 상장에서 제1부로 승격
1985
도호쿠 사업소를 개설
CLOSE
1986 1986 -
고객님의 과제 해결을 함께 생각한 개발 사이클 - 제조 업체로의 이행 -

1980년대 이후, 컴퓨터 산업의 확대 및 AV 기기의 수요가 증가한 것을 배경으로 반도체는 급격한 진화를 계속하고 있고 그것을 제조하는 장치도 또한 최첨단 기술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무엇이 필요한 지를 반도체 제조업체와 장치 제조업체 사이에 함께 조정하는 것이 불가결하게 되어, TEL은 상사 기능과 제조업체 기능이 일체화한 독자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하였다. 상사 기능의 측면에서 고객님의 진정한 요구에 부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장치를 찾아냄과 동시에 제조업체 기능으로 생산한 최첨단의 자사 기술과 융합시킴으로써 유일무이한 최적의 해결책을 신속하게 제공. 이에 의해 고객님에게 있어 TEL은 자사 이외의 기술을 포함하여 진정한 고민을 해결하고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기 위한 파트너로서의 존재가 되었다. 또한, TEL에 있어서도 고객님으로부터 최첨단의 기술 동향을 항상 파악하고 차세대 제품을 가장 먼저 연구・개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쌍방에게 있어서 이점이 많은 개발 사이클이 탄생하게 되었다.

1986
야마나시현 니라사키시 호사카 공업단지 내에 종합 연구소 건물을 설립
텔-섬코(TEL-Thermco)제 종형 확산로 1호기를 출하
텔-램(TEL-Lam)을 100% 자회사화
반도체 제조장치의 수출을 개시
텔 도호쿠 일렉트로닉스(주)를 설립
1988
‘텔-섬코(TEL-Thermco)’를 100% 자회사화하여 텔 사가미(TEL-Sagami)로 사명 변경
1989
코터/디벨로퍼 ‘CLEAN TRACK™ MARK-V’ 출하
반도체 제조장치 제조업체 매출액 세계 랭킹 톱으로(1991년까지 3년 연속)
1990
액정 디스플레이용의 제조장치를 개발하고 판매 개시
1993
Tokyo Electron FE Korea Ltd.를 설립하고 해외로 직접 판매하는 발판을 마련
CLOSE
1994 1994 -
전 세계의 고객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체제 구축 - 글로벌리제이션 -

1980년대는 일본의 반도체 사업이 메모리 분야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루고, 그 추세로 인해 TEL도 1989년~1991년에 3기 연속으로 반도체 제조장치 제조업체의 매출액 랭킹에서 세계 No.1을 달성하고 있었다. 한편, 미국의 반도체 제조업체는 PC용 CPU 및 화상 처리 시스템 등의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목표 시장을 시프트 하였다. 최첨단 제조 기술과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겸비한 일본의 기술을 강력히 원했던 미국의 반도체 제조업체는 판매 대리점을 통해 미국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던 TEL에 대해 직접 거래를 요구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리점에 대한 설득 및 현지 법인 설립 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그러나, 스피드감을 가지고 고객님의 진정한 요구에 부응해야만 한다고 TEL은 판단. 직판 체제의 구축이라는 큰 변화에 발을 내디뎠다.
제로부터의 활동이었으나 당초부터 그 지역 및 고객님을 잘 아는 자를 리더로 두어야만 한다는 방침을 관철하여 현지의 우수한 인재 초빙에는 자금도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한때 해외 파트너로서 TEL과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이 기꺼이 참가해 주었다. 그 후,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서도 똑같이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1994년에 30%였던 해외 매출 비율은 1999년에는 일찌감치 70%를 넘게 되었다.

1994
Tokyo Electron Europe Ltd.를 설립하고 구미에서 반도체 제조장치를 직접 판매 및 지원하는 체제를 구축
1995
기업 슬로건 ‘Customer Satisfaction’을 제정
첫 해외 개발 및 제조 거점인Tokyo Electron Oregon, Inc.를 설립
1996
Tokyo Electron Taiwan Ltd.를 설립
Tokyo Electron Massachusetts, Inc.를 설립
Tokyo Electron Phoenix Laboratories, Inc.를 설립
Tokyo Electron Texas, Inc.를 설립
1997
도쿄 일렉트론 미야기(주)를 설립(마쓰시마 사업소)
1998
Tokyo Electron Arizona, Inc.를 설립
도쿄 일렉트론 EE(주)를 설립
Tokyo Electron Israel Ltd.를 설립
2000
코터/디벨로퍼 ‘CLEAN TRACK ACT™ 8’ 1,000대 출하 달성.
CLOSE
2003 2003 -
두 번의 역경과 변혁으로의 의지 - TEL 재생 -

세계 시장에서의 성장도 찰나, 2001년에 IT 거품이 붕괴하여 적자를 계상. 다시 견고한 이익 기반을 구축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실현해 나갈 것을 결의한 TEL은 사원들의 주체적인 참여에서 태어난 ‘TEL 밸류’를 제정하였다. 또, ‘TEL 유니버시티’를 창설하여 사원의 자율적인 캐리어 형성을 추진하였다.
그 후, 세계적 호경기에서 2008년 3월 기에 최고 수익을 기록하였으나, 반년 후의 리먼 쇼크로 매출은 반감. 급격한 경기의 파도에 직면한 후의 2013년, 업계 수위였던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사와의 경영 통합을 발표. 미국 법무부와의 간격을 좁히지 못해서 이 안건을 해소할 수 밖에 없었으나 이것을 계기로 다시 세계 No.1을 목표로 ‘신생 TEL’로서 다시 출발하였다. TEL이 소중히 해야만 하는 것을 Vision으로서 명문화하고, 사원의 성과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직책과 공헌에 근거한 공정한 신 인사제도를 도입, 고객님의 과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프로세스 인티그레이션의 추진 등을 실시했다. 이것은 창업 당시부터 중요시해 온 사원의 의욕에 불을 붙이는 것이 모든 기업의 이해 관계자를 행복하게 한다라는 신념이 다시 경영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2006
행동 규범으로서 ‘TEL 밸류’를 제정
2007
인재 육성의 사내 기관 ‘TEL 유니버시티’를 설립
2007년도 프리즘 랭킹(우수한 회사 랭킹)에서 종합 2위
2009
태양광 패널 제조 장치 사업에 참가(스위스 Oerlikon Solar사를 매수)
2010
도쿄 일렉트론 미야기(주)를 설립(다이와 사업소)
2011
SiC 에피택셜막 성막 장치 Probus-SiC™가 ‘올해의 반도체 2011’에서 그랑프리 수상
세계에서 가장 지속 가능한 기업 100사(Global 100)에 선출
2014
매엽 세정 장치 ‘CELLESTA™ -i MD’가 ‘올해의 반도체 2014’에서 그랑프리를 수상
2015
미국 Applied Materials, Inc.와의 경영 통합 계약을 해소
신생 TEL로서 다시 출발(Vision, 중기 경영 계획의 책정, 코퍼레이트 로고 쇄신)
차세대 반도체용 스퍼터링 장치 ‘EXIM™’이 ‘올해의 반도체 2015’에서 우수상 수상
2016
산학관 연계 공로자 표창에서 내각 총리대신상을 수상(2003년에 이어 2 번째)
2018
3월 기에 매출액 1조 엔을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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